Why you don’t really know what you know

당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그것, 정말 아는 것 맞나요?

세계 최대 규모의 과학 실험 프로젝트인 LIGO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안다는 것이 실제로 어떤 의미인지 재검토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지난 7월, 루이지애나대학(Louisiana State University) 과 칼텍(Caltech)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조셉 지에이미(Joseph Giaime) 교수는 내게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정교한 과학 실험 시설을 견학시켜 주었다. 그의 아이패드에 설치된 화상회의 앱 줌을 통해 보긴 했지만 말이다. 그는 루이지애나와 워싱턴 주에 있는 초거대 물리학 협업 연구 시설 LIGO의 중앙통제실을 보여주었다. 2015년 LIGO는 13억광년 떨어진 2개의 블랙홀이 충돌하며 발생한 중력파를 최초로 감지했다.

약 30대의 대형 모니터가 LIGO의 상태를 다양한 각도로 보여주었다. 이 시스템은 수만 개의 데이터 채널을 실시간 모니터링한다. 스크린들은 광학 장치에서 산란되는 빛의 상태를 보여주었고, 데이터 차트는 지진 활동과 인간의 움직임으로 발생하는 기기의 진동을 나타냈다.

내가 방문한 이 정교한 시설에서는 여러 과학 분야의 전문가 수백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그들이 해답을 찾는 질문은 일견 단순해 보인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우리가 가진 지식 대부분이 다른 사람이 제공한 증거와 논리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제대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단지 과학자들만의 관심사는 아니다. 다른 많은 분야들도 점점 복잡해지고 있으며, 우리는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정보와 정보에 입각한 의견들을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심해지는 정치적 양극화와 거짓 정보로 인해 우리는 누구를 혹은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기도 어려워졌다. 의학의 발전, 정치적 담론, 경영 관행, 그리고 일상 생활의 많은 부분이 우리가 지식을 어떻게 평가하고 배포하는지에 달려있다.

우리는 지식을 축적하는 개인의 능력은 무척이나 과장하고 지식을 보유하는 사회의 역할은 과소평가한다. 디젤이 가솔린 엔진에 좋지 않고 식물이 광합성을 한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디젤이 무엇인지, 광합성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을까? 광합성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이 기사를 준비하면서 깨달은 것은 지식이 교과서와 관찰에 의존하는 것만큼 신뢰와 관계에도 의존한다는 것이다.

35년 전, 철학자 존 하드윅(John Hardwig)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지식에 얼마나 의존하는지를 다룬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것을 ‘지식 의존 (epistemic dependence)’이라고 불렀다. 이 논문은 학계에서는 널리 인정받았지만 대중적으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와 지식이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이 논문의 의미는 계속 커져만 가고 있다.

지식에 대한 한가지 공통적 정의는 데이터와 논리로 뒷받침되는 사실, 즉 ‘정당화된 진실한 믿음’이다. 하지만 개인으로서 우리는 스스로의 믿음을 정당화할 시간이나 기술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언가를 안다고 말할 때, 그 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하드윅은 곤란한 선택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우리 지식의 상당 부분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보유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이 실제로는 이해하지 못 하는 것들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2번째 옵션을 선택했다.)

이는 추상적인 철학적 질문처럼 보일 수 있다. 결국 ‘앎’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이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브라운대학에서 인지과학을 연구하며 ‘지식의 착각 (The Knowledge Illusion)을 공동저술한 스티븐 슬로만 (Steven Sloman)은 “만약 ‘누가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가 근원적 질문이라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별로 관심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만약 ‘무언가를 안다는 우리의 주장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와 ‘우리는 누구를 신뢰해야 하는가?’가 질문이라면, 그것은 시급한 문제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지난 6월 랜싯(Lancet)과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실린 코로나19 관련 논문 2편이 철회되는 일이 있었다. 저자들이 부정직한 공동 연구자들을 너무 신뢰한 것이 문제가 된 경우이다. 이 사건은 지식 의존 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 하면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백신이나 기후변화, 코로나19에 대한 거짓 정보의 확산은 지식 의존에 직접적 위협이 된다. 문제는 지식 의존 없이는 과학도 사회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식 의존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나는 이의 가장 극단적 사례인 LIGO를 살펴보았다. 나는 거기서 일하는 물리학자들이 두개의 블랙홀이 여러 개의 은하계를 건너가야 갈 수 있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충돌했는지를 어떻게 ‘아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무언가를 어떻게 아는지에 대해 뜻하는 바가 궁금했다.

LIGO 이야기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지에이미 교수는 말했다. 100년 전, 아인슈타인은 중력이 시공 연속체(spacetime continuum)의 왜곡이라는 이론을 제시하며, 움직이는 질량이 빛의 속도로 파문을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파동은 측정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작기 때문에 이 파동을 감지하려는 노력은 수십년 간 성과가 없었다.

LIGO는 1972년 MIT 물리학과 레이너 바이스 (Rainer Weiss) 교수가 논문을 통해 제안한 디자인을 바탕으로 하는 레이저 간섭계를 사용한다. 이 간섭계를 위에서 보면 2개의 팔이 직각을 이루는 대문자 L과 비슷한 모습이다. L자의 팔꿈치 부분에 주입되는 레이저는 2개로 분리되며, 각 팔의 끝에 있는 거울에서 반사되었다가 광파의 산과 골들이 서로 상쇄되는 방식으로 재결합한다.

지식 의존 : LIGO 사례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IGO, The 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는 1972년 MIT 물리학과 라이너 바이스 교수가 발표한 디자인을 바탕으로 한다. 레이저는 L의 팔꿈치에 주입되어 2개로 분할되고 4km 길이의 각 팔 끝에 부착된 거울에서 반사된다. 이 레이저들이 재결합할 때, 광파의 산과 골들은 서로 상쇄된다. LIGO는 만약 중력파가 존재한다면, 그로 인해 파동이 서로 비동기화될 것이란 이론을 확인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바이스는 중력파가 지나가면서 한쪽 팔 방향으로는 공간을 늘리고 다른 팔 방향으로 공간을 수축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레이저 빔의 이동 거리가 변화되고 파동 간 상쇄가 발생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될 때, 광검출기로 명확한 파형의 패턴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0억달러 이상 쏟아 부어 수십 년에 걸쳐 건설한 LIGO는 2015년 이후 10여 회에 걸쳐 공식적으로 이를 탐지해 냈다.

이 설비의 민감도 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각 팔의 길이는 4km이다. 이 거리에서 LIGO는 양성자 직경의 1만분의 1에 불과한 작은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지에이미 교수는 “물리학과 공학을 더 많이 알수록 이것이 얼마나 미칠 듯한 수준의 물건인지 더 잘 알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거울 분자들의 무작위적인 흔들림보다도 작다. 그래서 소음을 줄이기 위한 수많은 트릭들이 쓰인다. 빛은 진공 상태에서 터널 하부로 이동한다. 많은 광자가 포함된 강력한 레이저를 사용, 소음을 평균화할 수 있다. 거울은 유리 실에 매달려 진동을 수동으로 감쇠시킨다. 그리고 각 거울의 서스펜션은 지진계와 모션 센서의 피드백을 사용하여 진동을 능동적으로 억제하는 장치에 장착되어 있다. (고급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과 같은 원리다.) 이 시스템은 자기장, 날씨, 전력망, 심지어 우주선으로 인한 간섭까지 고려한다.

하지만, 하나의 탐지 장비로는, 신호가 우주에서 온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다. 만약 2대의 탐지 장비가 거의 동시에 같은 신호를 수신한다면, 신뢰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공중의 신호 출처의 위치를 파악할 수도 있다. 루이지애나와 워싱턴에 2개의 LIGO 기지가 있고, 이탈리아와 독일에도 버고(Virgo)와 GEO600이라는 중력파 관측 시설이 있는 이유다. 일본에서도 관측 시설이 건설 중이다.

LIGO에는 다양한 기술을 가진 대규모 팀이 필요하다. 산업 분야와 마찬가지로 과학에서도 분업은 점점 더 세분화되었다. 1786년 출판된 실험물리학에 관한 책은 천문학과 지질학, 동물학, 의학, 식물학을 다루었다. 독자는 이들 영역 전부에서 인류가 가진 지식의 대부분을 습득할 수 있다. 이 학문들은 이제 각각 분리된 분야이며, 이들로부터 여러 하위 학문들이 파생되어 나왔다. 백과사전적 지식은 더 이상 받아들여질 수 없게 되었다.

좁은 전문 분야 밖에서 무언가를 이룩하려면 과학자들 간의 기술 공유가 필요하다.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기술이 교류를 더 쉽게 만들어 줌에 따라 협업도 늘어났다. 1990~2010년 사이 과학 논문의 공저자 수는 평균 3.2명에서 5.6명으로 늘었다. 힉스 입자(Higgs boson)의 질량에 대한 2015년도 논문은 공저자가 무려 5,000명이 넘었다. 단독 저자들조차 혼자 작업하지는 않는다. 슬로만은 “과학자들은 종종 읽지도 않은 다른 과학자의 연구를 인용한다”며 “우리는 초록이 실제로 논문 내용의 요약이라고 믿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LIGO의 최초 중력파 발견을 발표한 2016년 논문에는 1,000명이 넘는 공저자가 있었다. 그들 모두 자신들이 쓴 내용의 모든 측면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을까? 칼텍 물리학과 교수이자 LIGO 책임자인 데이빗 라이츠(David Reitze)는 팀의 성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의 내용을 매우 높은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문제는 “수십만 개의 부품과 전자 장치, 데이터 채널을 가진 이 복잡한 감지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으며 우리가 측정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제로 측정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이다. 이 경우에 있어, 그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 팀으로 그 문제에 신경써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라이츠 교수에게 그 자신은 혹시 2016년 논문의 어떤 부분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는 않은지 물었다. 그는 “연구 성과를 재현하는데 필요한 상세 지식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몇몇 내용들이 분명히 있다”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데이터를 이론적 예측과 비교하고 블랙홀의 질량과 속도를 정확히 측정하는 컴퓨팅 작업 같은 것들이 그런 예이다.

루이지애나 리빙스턴에 있는 LIGO 시설의 책임자인 지에이미 교수는 논문의 공저자들 중 실제로 연구 시설에 발을 들여 본 사람은 절반이 안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이 자기 역할을 하는데 굳이 시설을 방문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LIGO의 관측 결과를 해석하려는 사람은 물리학과 천문학, 전자공학, 기계공학의 여러 분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이 있을까?”라며 “한번은 미생물에 의한 부식이라 불리는 현상 때문에 레이저가 지나는 튜브에 누출이 생길 뻔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생물학의 문제이다. 한 사람이 이 모든 것을 이해하기에는 이제 다뤄야 할 지식의 분량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LIGO 연구팀의 상호 의존성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LIGO는 운영 초기 8년 간 중력파를 감지하지 못 했고, 2010-2015년 사이에는 업그레이드를 위해 폐쇄되었다. 재가동 후 이틀 만에 그들은 한 신호를 감지했다. 당시 LIGO 국제협력연구 담당자였던 폴 소울슨 (Paul Saulson)은 “신호가 너무 아름다워서 놀라운 선물이거나, 도리어 의심스러운 결과 둘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소울슨은 시라큐스대학에서 물리학을 연구하며, 2003년에서 2007년까지 LIGO와 GEO600에서 연구하는 여러 나라 과학자들의 팀을 이끌었다. 누군가 가짜 신호를 여기에 주입한 것은 아닐까? 조사를 거쳐, 그들은 그런 짓을 할 만큼 전체 시스템을 잘 이해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제대로 해킹을 하려면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몇 사람 뜻을 합쳐야 했을 것이다. 소울슨은 “그런 천재적 악당이 여러 명 있어 팀을 이룬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모두 그 신호는 진짜이고, 두 개의 블랙홀은 실제로 충돌했다는데 동의했다. 그는 “이것은 결국 사회학적 논쟁이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종종 사물을 설명하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이를 ‘설명 깊이의 착각’(illusion of explanatory depth)이라고 한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지퍼나 무지개 같은 물건이나 자연 현상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는지 스스로 평가하게 했다. 그런 다음 그것들에 대해 실제로 설명을 하게 했다. 자신의 무지에 직면하자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급격히 떨어졌다. (이를 실제 체험하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자전거를 그려 달라고 말해 보라. 결과는 종종 현실과는 다르다.)

나는 라이츠에게 그 자신도 이런 착각의 희생양이 된 적은 없는지 물었다. 그는 LIGO가 주변 환경에 의한 소음 신호를 구분하기 위해 수천 개의 센서와 수백 개의 상호작용하는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에 의존하고 있음을 언급했다. 그는 자신이 이 문제를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행사에 이 문제를 설명할 대담자로 나서기로 해서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는 실제로는 자신의 이해가 부족함을 깨달았다. 그는 수시로 변화하는 시스템을 관리하는 수학적 접근을 말하는 동적 제어이론에 대한 벼락치기 공부를 해야 했다.

이 착각은 인지과학자 슬로만이 ‘전염적 이해’(contagious understanding)라고 부르는 현상으로 인한 것일 것 있다. 그는 사람들에게 빛나는 암석과 같은 가공의 자연 현상에 대해 읽게 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실험 참가자 중 일부는 이 현상이 전문가에 의해 잘 파악되었다고 들었고, 다른 이들은 이것이 신비한 현상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이 현상이 잘 파악되었지만, 기밀로 분류되었다는 말을 들은 그룹도 있었다. 이후 참가자들은 이 현상에 대한 자신의 이해도를 스스로 평가했다. 첫번째 그룹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에 대해 더 높게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치 그 현상이 이해 가능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도 이미 그 현상을 이해했다는 듯이 말이다.

다른 사람의 지식을 자신의 것처럼 취급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1987년, 심리학자 대니얼 웨그너(Daniel Wegner)는 ‘분산 기억’(transactive memory)이라고 하는 집단 인지의 한 형태를 제안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알고, 또 다른 사람이 다른 것을 안다는 것을 안다는 말이다. 한 연구에서 커플들은 “케이프로 II (Kaypro II)는 개인용 컴퓨터이다”와 같은 몇 가지 사실들을 암기하라는 과제를 받았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파트너가 어떤 주제에 대해 전문가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그 주제에 대해 더 많은 사실을 기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마치 서로의 외부 기억장치처럼 행동하며 새로운 지식을 말없이 분열시키고 정복했다.

분산 기억을 연구하는 다른 학자들은 3명으로 이루어진 그룹들에 라디오를 조립해 보라고 요청하는 연구를 했다. 어떤 그룹은 한 팀으로서 라디오 조립 방법을 배웠고, 다른 그룹은 개별적으로 교육을 받은 후 팀을 이루었다. 팀으로 함께 교육을 받은 그룹이 전문화, 조정, 신뢰 등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이며 더 나은 분산 기억을 나타냈다. 조립 과정에서 실수는 다른 그룹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이들 그룹의 각 구성원은 개별적으로 교육을 받은 사람에 비해 라디오 조립에 대한 지식은 부족했을 수 있다. 그러나 집단으로서는 – 이것이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활동하는 방식이다 – 지식 의존이 성공을 낳았다.

자신의 지식을 다른 사람에 의존적인 것으로 간주한다면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가장 명확한 교훈은 자신이 어떤 주제에 대해서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이해가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질문을 더 많이 해야 한다. 어리석은 질문이라도 마찬가지다.

지식 의존을 인정하면 보다 생산적 토론도 가능하다. 2013년 슬로만은 설명 깊이의 착각이 정치적 양극화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한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인 실험 참가자들에게 의료체계, 조세, 기타 핫 이슈들에 대해 스스로의 이해 정도와 지지 정도를 평가하게 했다. 실험이 진행되고 참가자들이 사안에 대한 지신의 이해도가 떨어짐을 자각하게 됨에 따라 정책에 대한 그들의 입장도 덜 극단적으로 바뀌었다. 흔들리는 땅 위에서 견고하게 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슬로만은 “오바마 케어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아마 오바마 대통령도 모를 것이다”라며 “오바마 케어는 너무나 방대하고 복잡하다. 우리는 단지 전체 내용의 99.9%를 생략한 몇 줄의 슬로건만 접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지식 의존에 관한 하드윅의 최초 논문에서 또 다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합리성은 독자적 사고 능력을 필요로 한다는 당연해 보이는 생각은 사실 “전적으로 비현실적인 낭만적 이상”이라고 그는 썼다. 만약 우리가 그 이상을 따른다면 우리는 상대적으로 조잡하고 충분한 정보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신념만을 갖게 될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혼자 생각하는 대신 전문가들을 신뢰해 보라고, 지금 하고 있는 것보다 더 신뢰해 보라고 그는 제안했다.

나는 슬로만에게 (그 역시 전문가이다) 그것이 좋은 생각인지 물었다. 그는 “물론이다!”라며 “플로리다. 이 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당시 플로리다에서는 사람들이 마스크 등 보호장구를 하라는 전문가들의 말을 무시했다가 확진자가 폭증했다.) 물론 실제로는 합리성은 조언을 받아들이는 것과 스스로 생각하는 것 사이의 균형을 필요로 한다. 어떤 사안에 대한 최소한도 알아보지 않는다면, 쉽게 다른 사람의 말에 속게 될 것이다.

사실의 신빙성을 알아보려면 전문가들이 그에 동의하는지 확인해 보자. 루이지애나대학 물리학과 교수이자 LIGO의 또 다른 전임 국제협력연구 담당자였던 가브리엘라 곤잘레즈(Gabriela González)는 “나는 당뇨병 환자인데, 임상 실험의 데이터를 스스로 분석해 보려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치료 기법에 대한 언론 보도를 통해 의학계의 합의점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독립적인 전문가가 다른 전문가의 주장을 검토하게 할 수도 있다. 과학계에서는 ‘동료 평가’(peer review)를 통해 이런 일이 이뤄진다. 일상 생활에서는 아마 삼촌과 함께 누가 자동차나 요리 같은 것을 잘 아는지 알아보는 식이 될 것이다. LIGO에서는 여러 위원회들이 실험의 각 단계마다 리뷰를 실시한다. 외부 전문가에게 다른 사람이 쓴 프로그래밍 코드를 검토해 달라고 요청하거나, 면밀한 질문을 던지기도 할 것이다. 결합된 데이터를 분석하는 연구자들은 각각 다른 사람이 만든 여러 개의 알고리즘을 동시에 사용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테스트도 수시로 실시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본능적으로 쓰는 또 다른 검증 기법은 사람들이 전문 분야에 대한 질문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룻거스대학 (Rutgers University) 철학과 알빈 골드만 (Alvin Goldman)은 2001년 발표한 “전문가: 누구를 신뢰해야 하나?” (Experts: Which ones should you trust?)라는 논문에서 ‘변증법적 우월성’ (Dialectical superiority) 개념을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두 전문가 사이의 토론에서 “상대적으로 빠르고 부드럽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언제든 주장에 대해 반박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사안에 대해 전체적 이해를 가진 사람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는 이 방법의 약점도 함께 지적했다. (모든 질문에 대답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안 좋은 신호인 경우도 있다. 슬로만은 “전문가를 가리는 중요한 단서는 겸손함이다. 충분히 겸손을 표시하는지, 자신들이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골드만은 논문에서 어떤 전문가의 의견이 믿을 만 한지 구분할 단서 4가지를 추가로 제시했다. 다른 전문가들의 승인, 자격증이나 평판, 편견 또는 이해상충에 대한 증거, 지금까지의 실적이다. 그는 이 4가지 단서 모두 한계가 있음을 인정했지만, 그래도 실적이 가장 도움이 되는 단서라고 보았다. 이런 방식은 객관적 증거에 기반한 평가라 하기 보다는 개인에 대한 평가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슬로만은 그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는 “나에게는 다른 사람의 지식을 전부 습득하는 것보다는 누군가의 신뢰도를 평가하는 것이 훨씬 쉽게 여겨진다”고 말했다. 또 공식 학위나 증명서를 중시하는 것에 대해서도 “나를 엘리트주의자라 불러도 할 수 없지만, 명망 있는 교육기관의 학위를 갖고 있다는 것은 분명 그 사람에 대한 어떤 신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지식은 증거와 신뢰, 모두에 관한 것이다. 수십년 간 중력파 연구 커뮤니티에 대해 연구해 온해리 콜린스(Harry Collins) 카디프대학(Cardiff University) 사회학과 교수는 얼굴을 맞대며 하는 상호작용이 무엇이 진실인 지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영국 과학자들과 공동 작업을 하기 위해 글라스고를 방문한 한 러시아 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영국에 온 까닭은 영국 연구자들이 그의 성과를 실험실에서 재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머무는 동안 그들은 결국 재현에 실패했다. 그렇지만 그와 함께 일한 영국의 과학자들은 더 이상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가 연구에 임하는 모습을 보고 그를 신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콜린스는 “그는 절대로 밖에 나가 점심을 먹지 않았다”라며 “멀리 러시아에서 영국까지 온 만큼, 글라스고의 명물 카레 요리를 먹으러 갈 수도 있을텐데 그는 언제나 샌드위치만 고집했다”고 말했다. 영국 과학자들은 이처럼 헌신적인 연구자가 결과를 조작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연구를 거듭해 마침내 비슷한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지식 의존은 또한 진행 중인 작업의 공유가 중요함을 알려 준다. 간섭계가 나오기 전 진동 알루미늄 봉으로 중력파 감지 장비를 만들던 시절에는,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원 데이터를 비밀로 하고, 자신들이 확실하다고 생각한 감지 사례의 목록만 공유했다. 그러다 결국 과학자들은 서로 신뢰하고 보다 밀접하게 일하기 시작했다. 지에미이는 “LIGO와 다른 관측 시설의 물리학자들이 기존 방식을 고수했다면 우리는 2017년 중성자성의 충돌이라는 세기의 발견을 날려 버릴 수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2015년의 블랙홀 충돌 연구와는 달리 2017년 연구는 방사선, 감마선, X선, 가시광선 망원경 등을 활용해 연구되었다. 이 발견은 LIGO와 버고가 데이터를 공유해 충돌이 일어난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에이미는 “이러한 협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두 중성자성의 충돌이 일어난 위치를 제대로 알지 못 해 망원경을 신속히 관측 가능한 위치로 향하게 하지 못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지식 의존에도 단점은 있다. 조직에서 사람들이 들고 나는데 따른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 프로젝트의 핵심 역할을 맡은 사람이 떠날 때 잃는 집단 지식과 역량은 회복할 수 없다.

과학 협력 연구의 모습이 바뀜에 따라 과학상도 바뀌어 왔다. 2017년 중력파 발견에 대한 공로로 킵 손(Kip Thorne)과 배리 배리시(Barry Barish)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바이스는 “노벨상은 개인이나 소수의 사람이 연구를 수행하던 구시대의 유산”이라며 “내가 노벨상을 받는다는 사실이 매우 어색하게 느껴졌고, 나는 단지 함께 연구한 모든 사람의 대표로 수상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견학이 끝날 무렵, 지에이미는 자신의 사무실 벽에 붙어 있는 명판을 가리켰다. LIGO 국제협력연구 팀은 2016년 기초물리학 특별혁신상(Special Breakthrough Prize in Fundamental Physics)을 받았다. 상금 중 100만달러는 바이스와 손, LIGO의 또 다른 설립자 중 한명인 로널드 드레버 (Ronald Drever)에게 돌아갔다. 200만달러는 1000여 명의 연구자들에게 똑같이 나눠졌다. 지에이미는 “이는 대규모 연구 집단이 하나의 상을 함께 받을 수 있는, 과학의 새로운 시대의 기념물이다”라고 말했다.

과학상들은 오늘날 과학 연구가 수행되는 방식에 보조를 맞춰 변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지식 격차를 메우기 위해 항상 서로 의존해 왔지만, 전문화와 협업은 이제 각 분야 전문가들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합하면서 극단으로 나아가고 있다. LIGO 국제협력연구에는 수 백명이 관여하고 있는데, 이중 상당수는 서로 만난 적도 없다. 이들은 수천 명의 다른 사람들이 기여한 도구와 지식을 활용하며, 이들 수천 명은 다시 수백만 명의 다른 사람들이 기여한 도구와 지식에 의존한다. 이러한 기관들은 우연히 생겨나지 않는다. 서로 손잡고 일하는 정교한 기술적, 사회적 시스템을 필요로 한다. 신뢰가 증거를 제공하고, 증거가 다시 신뢰를 제공하는 식이다. 이것은 사회 전체에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우리가 증거와 신뢰의 자체 강화 시스템을 훼손한다면 무언가를 알고 행하는 우리의 능력은 붕괴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더 광범위하고 철학적이기까지 한 교훈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아는 것이 적다. 하지만 동시에 훨씬 더 많이 알고 있기도 하다. 지식은 사람들 사이의 이음매에서 손쉽게 나눠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 당신은 광합성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겠지만, 당신은 가장 작은 수준에서 이를 조사하고 공동의 유익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지식 생태계의 빠질 수 없는 일부이다. 결국 당신은 무엇을 아는가? 당신은 우리가 아는 것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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