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RISPR 기술, 누구나 유전자 치료를 받는 시대를 열까?

2023년 10대 미래 기술
본 기사는 MIT 테크놀로지 리뷰의 2023년 10대 미래 기술로 선정된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 시리즈입니다.
건강한 삶을 사는 비결은 잘 알려져 있다.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것이다. 전 세계 사망 원인 1위인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방법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만약 심혈관 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을 맞을 수 있다면 어떨까? 심지어 일반적인 백신과 달리 주사 한 번으로 접종자의 DNA를 영구적으로 바꿔 평생 예방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학계에서는 이러한 일이 머지않았다고 말한다. 특히 크리스퍼(CRISPR) 기술을 비롯한 유전자 편집 기술이 진보한 덕분에 곧 가능해질 것이라는 입장이다. 초창기의 크리스퍼는 단순히 DNA를 절단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제 크리스퍼는 사람 유전체에 완전히 새로운 DNA 절편이나 유전자 전체를 삽입하여 기존의 유전정보를 다른 것으로 바꾸기 위한 기술로 개발하는 과정에 있다.
이러한 기술이 개발된다면 크리스퍼는 유전 질환 외 다른 건강 문제를 치료하는 데에도 널리 사용될 수 있다. 한 예로 2022년 7월 미국의 바이오테크 기업 버브 테라퓨틱스(Verve Therapeutics)는 크리스퍼를 응용한 한 치료법의 임상시험에 돌입했다. 이 치료법은 사람의 유전정보를 바꾸어 콜레스테롤 수치를 영구적으로 낮춰준다.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첫 임상시험 참여자는 유전적으로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매우 높고 이미 심장병을 앓고 있는 환자였다. 하지만 버브의 설립자이자 선임 과학 고문인 키란 무수누루(Kiran Musunuru)는 앞으로 이 치료법이 대부분의 사람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버브의 콜레스테롤 수치 감소 치료법은 PCSK9이라고 불리는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유전자를 영구적으로 비활성화시킨다. 이 단백질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는 데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누수루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이라고 해도 PCSK9 발현을 차단하여(turn-off) 콜레스테롤 수치를 더욱 낮출 수 있다. 이를 통해 심근 경색의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며 “모든 성인에게 통용되는 일반적인 전략”이라고 말한다.
크리스퍼의 진화
실험실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혁신이 개발되는 가운데 크리스퍼 치료법은 이미 임상시험에 들어섰다. 고작 10년 전 세포 내 유전체를 편집하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는 실로 엄청난 성과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이하 UC 샌디에이고)의 알렉시스 코모르(Alexis Komor)는 “이 치료법은 임상에 적용되기까지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새로운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법을 개발한 바 있다.
유전자 편집 치료의 원리는 유전체의 DNA를 직접 교체하는 것이다. 1세대 크리스퍼 기술은 그저 DNA를 잘라낼 뿐이었다. 그다음 세포가 절단 부위를 수선하는 과정에서 해로운 유전자는 보통 비활성화되었다.
다음으로 나온 크리스퍼 기법은 이와는 약간 다르다. ‘크리스퍼 2.0’이라고도 불리는 이 기술은 DNA의 핵심 구성 요소인 염기를 표적으로 삼는 염기 편집(base editing) 기법을 활용한다.
DNA에는 아데닌(A), 티민(T), 사이토신(C), 구아닌(G)이라는 총 네 종류의 염기가 있다. 크리스퍼 2.0 시스템은 DNA를 자르는 대신 단일 염기를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다. C를 T로, A를 G로 치환해 염기를 편집하는 것이다. 무누수루는 “가위보다는 지우개 달린 연필과 같다”고 설명한다.
이론적으로 염기 편집은 이전의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법보다 안전하다. DNA를 절단하지 않으므로 실수로 중요한 유전자가 제거되거나 DNA가 잘못된 방식으로 다시 합쳐질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버브는 타사에서 연구하고 있는 다른 치료법들과 마찬가지로 염기 편집을 활용해 콜레스테롤 수치 감소 치료법을 개발했다. 예를 들어 빔 테라퓨틱스(Beam Therapeutics)라는 회사는 염기 편집 기법을 통해 겸상 적혈구 빈혈증을 비롯한 질병의 치료법을 개발하고 있다.
다음으로 프라임 에디팅(prime editing)이라고 불리는 ‘크리스퍼 3.0’이 있다. 이 기법으로는 DNA 서열 일부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거나 새로운 유전정보를 DNA에 삽입할 수 있다. 나온 지 수 년밖에 되지 않았고 아직 동물 실험 단계에 있지만, 이 기술의 잠재성은 어마어마하다.
왜냐하면 프라임 에디팅을 통해서는 유전자 편집의 범위를 대단히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퍼 1.0’과 염기 편집은 DNA를 자르거나 단일 염기를 치환하는 상황에서만 유용하다는 제약이 있다. 하지만 프라임 에디팅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유전자를 유전체에 삽입할 수 있다.
어쩌면 더 다양한 유전적 질환들이 이 기술의 치료 대상이 될 수 있다. 무누수루는 만일 염기 치환을 넘어 특정 돌연변이를 교정하고자 한다면 “프라임 에디팅이 유일한 선택지”라고 말한다.
프라임 에디팅이 성공한다면 이는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병명의 유전자 질환을 가진 사람이라도 저마다 다른 유전적 원인이 있을 수 있다. 무누수루는 문제가 되는 부위를 바로잡을 수 있는 유전자를 삽입해 DNA를 교정할 수 있다면 모두를 낫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유전자 전체를 삽입할 수 있다면 환자가 어떤 돌연변이를 가졌는지는 상관없다”며, “그저 정상 유전자 전부를 넣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새로운 크리스퍼 기법은 유전자 편집 치료의 영역을 상당히 넓힐 수 있다. 더 많은 사람, 더 많은 질환이 유전자 편집 치료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유전적 돌연변이에 의한 질병이 아닌 질병도 표적이 될 수 있다. 사실 이전 세대의 크리스퍼 기법도 변이 유전자가 원인이 아닌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활용된 적이 있다. 무누수루에 의하면 버브의 영구적인 콜레스테롤 수치 감소 치료법은 대부분의 성인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최초의 크리스퍼 치료법이 될 것이다.
유전적 예방 접종
버브가 시험 중인 치료법에는 PCSK9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유전자에 있는 단일 염기를 치환하는 과정이 있다. 이를 통해 해당 유전자는 발현되지 않게 되어 PCSK9 단백질은 훨씬 적게 만들어질 것이다. PCSK9 단백질은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유지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단백질이 감소하면 콜레스테롤 수치 역시 감소할 것이다. LDL 콜레스테롤은 동맥 경화와 관련이 있는 콜레스테롤이다.
무누수루는 쥐와 원숭이를 대상으로 이 치료법을 시험했을 때 이들의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는 며칠 만에 60~70%가량 감소하였다고 말한다. 그는 “수치가 한번 떨어진 후로는 계속해서 유지되었다”고 덧붙였다. 버브는 현재 진행 중인 임상시험이 몇 년 더 걸릴 것으로 본다. 만약 이 임상시험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더 큰 규모의 임상시험이 진행될 예정이다. 미국 식품의약청(FDA)이 마침내 이 치료법을 승인하면, 의사들은 이 치료법을 환자에게 처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무수누루는 “크리스퍼 치료법이 실제로 FDA의 승인을 받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앞으로 이와 유사한 접근법을 통해 고혈압과 당뇨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UC 샌디에이고의 코모르는 알츠하이머를 예방하기 위한 크리스퍼 치료법 또한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건강한 사람의 유전체를 편집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을 뿐 아니라 건강한 사람에게는 불필요한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녀는 “만약 언젠가 나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기 위해 내 간세포의 유전자를 편집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하지 않겠다고 말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문제가 없다면 내 유전체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캐나다 버나비(Burnaby)에 위치한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Simon Fraser University)에서 첨단 기술의 법적∙윤리적 함의를 연구하는 타니아 부벨라(Tania Bubela) 교수는 어떠한 새로운 치료법도 최소한 기존의 것보다는 안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세상의 모든 약은 각자의 부작용이 있다. 부벨라는 “약의 경우에는 부작용이 나타날 경우 다른 약으로 변경할 수가 있다”며 “유전자 치료의 경우에는 일단 치료가 적용되고 나면 되돌릴 방법이 마땅하지 않다”고 말한다.
유전자 편집 치료가 수많은 대중을 위해 사용되기 위해서는 안전성뿐 아니라 비용도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부벨라는 “크리스퍼와 같은 유전자 기반의 치료가 아주 단순하게 복용할 수 있는 콜레스테롤약보다 더 안전하고, 비용 대비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치료가 더 저렴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리고 단 ‘1회 접종’만으로 영구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점은 사람들에게 장점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번 임상시험이 특별히 다른 치료법이 없는 희귀질환 환자에게 초점이 맞춰진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코모르는 “이들이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크리스퍼가 더 넓게 활용되는 것은 기대되는 일이지만, “우리는 일반 대중을 돕기에 앞서 이러한 사람들을 도와야 할 윤리적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