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타버스 모임에서 죽음, 슬픔, 고통을 나누는 사람들
클레어 매트(Claire Matte)가 남편 테드(Ted)의 시한부 판정 소식을 들은 지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그녀는 가상현실(VR) 속 낯선 사람들에게 남편이 앞으로 몇 달밖에 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2021년 당시 62세로 은퇴 후의 삶을 보내고 있던 매트는 이따금 현실을 떠나 사회적 교류를 하려는 목적으로 VR 헤드셋을 구입했다. 현실에서 그녀의 일상은 말기 암 환자인 남편을 돌보아야 한다는 책임감에 위축된 상태였다. 그녀는 메타(Meta)의 VR 기기인 오큘러스(Oculus)로 가상현실 속에서 세계를 여행하고 노래방을 즐겼다.
그러던 중 2022년 1월 테드가 받던 방사선 치료가 32번 만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의사는 매트 부부에게 항암 치료를 포기할 때가 되었다는 말을 꺼냈다.
“테드는 본인의 기대 여명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았고 이내 진료실을 떠났다”고 매트는 말한다. 그러나 그의 보호자로서 그녀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료실 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그가 멀어지자 의사들은 그가 4~6개월 정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테드는 남은 시간이 최소 6개월은 되는지 물었다. 매트는 ‘그렇다’고 답하기로 했다.
테드는 시한부 선고를 수월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들뜬 모습으로 풋볼 시즌을 기다렸고 TV를 보며 크게 웃었다. 하지만 상태는 점차 악화되었다. 곧 외출을 못 하게 되었으며 면역력이 약한 탓에 손님을 만나지도 못했다. 그들의 고립은 심화되었다.
매트는 “나는 테드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노래할 기분조차 들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가상세계에 발길을 끊지 않았다. 그 달 말 매트는 가상현실에서 열리는 실시간 모임들을 훑어보다가 ’데스 Q&A(Death Q&A)’라는 이름의 모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데스 Q&A’는 ‘죽음과의 사투’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다. 이곳에서는 가볍게 시작된 대화가 놀라울 정도로 친밀한 이야기로 흘러갈 수 있다. 참석자들은 누구와도 공유한 적 없는 경험과 감정을 이곳에서만큼은 자주 드러낸다. 수십 명의 참석자들은 발랄한 만화풍의 아바타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익명성과 유대감이 공존하는 가상현실의 특징 덕분에 사람들은 숨김없이 자유롭게 낯선 사람들과 진솔한 관계를 맺는다.
필자는 4개월 동안 데스 Q&A를 포함해 이와 유사한 세션들에 참석하여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관찰하였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암 진단을 받아들였고 결혼 생활의 고민을 나누었으며, 불과 몇 시간 전 세상을 떠난 부모님이나 친구들에 대한 소중한 기억을 공유했다. 또 어떤 사람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회상했고 누군가는 자기 죽음을 관조하는 방법에 대해 질문했다.
단지 게임용이라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매트의 사례처럼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일상생활의 깊은 고통을 이야기하기 위해 VR 헤드셋을 찾고 있다. 데스 Q&A와 같은 VR 모임의 참가자들은 새로운 방식의 360° 디지털 커뮤니티를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체험하고 있다. 이 방식은 줌(Zoom)이나 기타 온라인 포럼보다 훨씬 더 감정적이고 강렬하며 복잡한 인간관계에 얽매이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의 대면 경험을 기반으로 긴장감이 조성되는 전통적인 방식과 매우 다른 형태다.
톰 니켈(Tom Nickel)은 라이언 아슈하이머(Ryan Astheimer)와 가상현실 모임을 공동 운영하는 73세의 전직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다. 그는 “VR에서 형성되는 관계는 서로 마음의 문을 열어 매우 친밀하고 깊어질 수 있다”고 말하며 “이 관계들은 복잡하지 않다. 참가자들이 가상현실에서 교류할 뿐 실제 세계에서까지 서로 의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모임의 참가자들은 현실이 아닌 가상현실에서만 만난다. 이들은 달리 신경 쓸 것 없이 오로지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기만 한다. 많은 사람이 이 모임을 생명줄이라고 부른다. 특히 사람들은 팬데믹 기간 동안 이 같은 모임을 절실히 원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외로움에 고통받고 있으므로 메타버스 구축에 많은 돈이 투자되는 추세는 앞으로도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친밀한 VR 커뮤니티 구축
데스 Q&A에 입장하면 먼저 티베트 불교 사원을 재현한 매력적인 건물 앞에 아바타가 놓인다. 이 건물 주위로 실제 묘지 이미지가 매주 다른 모습으로 꾸며진다. 사람들은 제단 앞에 서 있는 니켈과 마주 보도록 아바타를 배치한다. 보통 니켈은 따뜻하고 친절한 목소리로 누군가 특별히 공유할 만한 이야기가 있는지 물으며 세션을 시작한다.
참석자 가운데 약 20%가 컴퓨터로 접속하는데 컴퓨터로는 3D 가상 현실을 체험할 수 없다. 나머지는 VR 헤드셋을 사용해 참석한다. 필자도 헤드셋을 착용했다. 헤드셋을 끼면 다른 참석자들의 떨리는 목소리와 억양을 바짝 가까이서 들을 수 있다. 마치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웃음소리와 눈물을 훌쩍이는 소리도 적지 않게 들려온다.
세션이 진행되는 공간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고해성사실 같은 느낌을 준다. 모임을 지켜보는 위치에서는 교회 예배나 가족 모임을 방해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참석자들은 다른 참석자들의 삶에 관심을 갖고 대화를 나눴다. 니켈이 세션을 시작하기 전 단골 참석자들은 종종 끼리끼리 모여 밀린 소식을 주고받는다. 한 시간 후 세션이 종료된 후에도 참석자들은 사회자 없이 마음껏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자리를 떠나지 않고 오래 머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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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는 남편의 시한부 선고를 들은 직후 처음 데스 Q&A에 참석했다. 테드는 얼마나 더 살 수 있는지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그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지 이야기할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매트가 이야기를 마치자 다른 참석자들이 손을 들어 공감을 표했다. 그리고 그들은 배우자와의 사별을 어떻게 슬퍼했는지, 또 아픔 속에서 어떻게 회복하였는지 말해 주었다. 이것이 데스 Q&A에서 가장 놀라운 점이다. 한 참석자가 먼저 이야기를 하면 거의 반드시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나타나고 그 사람이 또다시 자신의 경험을 나눈다. 참석자는 이 모임 안에서 공감과 위로를 받는다.
매트는 “나는 내가 결국 이 모임에 매주 참석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알았다”고 말한다.
‘데스 Q&A’에서 매트는 케냐에 사는 38세 남성 폴 와이야키(Paul Waiyaki)를 만났다. 조지아주에 사는 매트는 이제 그를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라고 부른다. 그녀는 “마치 유치원에 다닐 때처럼 누군가를 보고 ‘안녕, 나는 너와 친구가 되고 싶어’라고 말했다. 어른들은 친구를 그렇게 사귀지 않는다. 하지만 오큘러스를 쓰고 아바타와 함께라면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와이야키는 VR을 통해 모임에 참석하기 전까지 여동생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남성은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데스 Q&A에서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참고 있던 눈물을 쏟아내며 슬퍼할 수 있었다. 아픈 일이었지만, 상처가 아물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팬데믹 동안의 작별 인사
‘세잉 굿바이(Saying Good bye)’는 데스 Q&A와 비슷하지만, 저녁에 운영되는 세션으로 둘 다 ‘상실’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룬다. 톰 니켈의 아들 제레미(Jeremy)는 2017년 ‘에볼VR(EvolVR)’이라는 가상세계 내 영적 커뮤니티를 설립했는데, 데스 Q&A와 세잉 굿바이는 에볼VR에서 매주 제공하는 40여 개의 실시간 모임 중 일부일 뿐이다.
제레미 니켈은 에볼VR을 설립하기 이전에 ‘신학적으로 매우 자유로운’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Bay Area)에서 종파를 초월한 교회 모임을 이끌었다고 한다. 그가 2015년 VR 헤드셋을 처음 접했을 당시 마침 주류 종교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목회 방식을 찾고 있었다.
제레미는 “VR 세상을 경험하자마자 머릿속에서 전구가 켜진 느낌이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아바타들이 정말 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몰입감 덕분에 그는 헤드셋을 쓴 사람들 사이에 영적인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물리적 형태의 연단을 떠나 VR에서 실시간 명상 집회를 열었다.
그리고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세잉 굿바이와 데스 Q&A는 모두 2020년 초에 시작되었다. 톰 니켈에 따르면 그들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잃게 되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에 대비하기 위해 이러한 세션을 마련” 하였다. 그들은 “사람들이 각자의 상실에 대해 털어놓을 장소가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인해 병상에서 임종 지키기가 불가능해지고,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망이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암 생존자이기도 한 니켈은 수년간 호스피스 간병인으로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편안하게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러한 경험은 세잉 굿바이와 데스 Q&A 세션의 수많은 참가자 사이에서 그가 사회를 보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친구와 가족의 죽음을 애도하고 취소된 졸업식을 아쉬워했으며 해변이 폐쇄된 사실에 슬퍼했다. 또 누군가는 나이 든 가족의 건강을 걱정하기도 했다. 니켈은 이 모든 이야기에 사람들이 귀 기울이고 공감할 수 있도록 중재했다.
또한 코로나19는 사람들에게 심리학자들이 ‘죽음의 현저성(mortality salience)’이라고 부르는 것을 자각시켰다. 죽음의 현저성이란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고 나 또한 언젠가 죽을 수 있다’는 인식을 말한다.
컬럼비아 대학교(Columbia University)에서 슬픔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 엘레나 리스터(Elena Lister)는 사람이 죽음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어느 정도는 거리를 두어야 건강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의 동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최근 사회 전반에 걸쳐 상실감이 지나치게 만연해 있다고 한다. 사회가 충분한 애도의 과정 없이 너무나 많은 죽음을 경험하면서 나타난 결과다.
“그들 마음속 아주 깊은 곳의 고통을 말로 표현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리스터와 같은 의사들은 ‘병적인 애도(complicated grief)’를 우려한다. 이는 상실 후 1년이 지났음에도 극심한 슬픔의 고통이 사그라지지 않을 때 정신 질환으로 진단되는 경우를 뜻한다. 유족의 약 10%가 이러한 병적인 애도를 겪으며, 이러한 사람들은 심각한 사회적 절망과 고립 때문에 상실 이전의 일상을 회복하기 어렵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사람들의 마음에 병적인 애도가 뿌리내리기 쉬운 환경을 만들었다. 본래 사람들은 장례식이라는 애도 과정을 통해 상실을 현실 속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리스터는 지난 2년 동안 사람들과 “함께 포옹하고, 울고, 흐느낄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팬데믹이 실제로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에 대해 논하는 것을 더욱 기피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가상현실에서 어떻게 슬픔을 소화할 수 있는지 설명하기 위해 리스터는 유명한 인용구를 빌려 말했다.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감당할 수 있다(What’s mentionable is manageable).” 그녀는 사람들이 아바타가 되어 데스 Q&A에 들어가면 “그들 마음속 아주 깊은 곳의 고통을 말로 표현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리스터는 이 과정을 통해 고통 그 자체였던 것이 대처 가능한 무언가로 전환된다고 덧붙였다.
사회적 고립은 상실이 병적인 애도로 굳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그리고 이런 애도 과정 때문에 다른 인간관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큰 상실감을 겪는 사람에게 일상적인 대화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진부하게 느껴진다. “주변 사람들도 결국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으므로 이내 이야기를 들어주기 힘들어지게 된다”고 니켈은 말한다. 그러나 데스 Q&A에서는 고통을 말할 기회가 주어지며, 많은 청중이 거기에 귀를 기울인다. 리스터는 이처럼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이 슬픔을 지나 건강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데 유익하다고 강조한다.
그녀는 일종의 ‘보호책이 있기 때문에’ 가상현실에서의 지지 모임이 기존 형태보다 더 적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리스터는 “참가자들은 무엇을 보이고 드러낼지 통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바타라는 보호막 뒤에서 다시 볼 필요가 없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에서 사람들을 몹시 정직하고 진솔하게 된다.
매트가 VR에서 경험한 것도 이와 같았다. 매트는 테드가 생전에 아내에게 짐이 될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모임에 와서 무미건조한 말투로 나에게 닥친 어려움에 관해 이야기했고 그럴 때마다 니켈은 ‘오, 잠깐 이 주제에 집중해 보자’고 말했다. 어떤 날은 너무 힘들어서 집 안을 계속 배회하면서 울부짖지 않고서는 정말 버티기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신 차리자.’” 그녀는 황폐해진 마음을 가상현실에 펼쳐 놓았고 남편의 죽음을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2021년 즈음 제레미 니켈은 그의 비영리 단체가 어떤 변곡점에 도달했다고 느꼈다. 2017년부터 그 당시까지 에볼VR에는 약 4만 명의 참가자가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 시점에서 그는 “우리는 이 모임을 지금까지처럼 수백 명 정도의 규모로 유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게 아니라면 더 많은 사람과 이 모임을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더 많은 사람이 애도하는 방법을 연습할 수 있도록 더 큰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2022년 2월 그는 에볼VR을 로스앤젤레스에 본사를 둔 회사인 TRIPP에 비공개 금액에 매각했다. 지난해 아마존을 포함한 후원자들로부터 1,100만 달러(약 135억 원) 이상의 자금을 조달한 TRIPP는 이미 지난 2017년부터 VR 기반의 명상 서비스를 제공해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가상현실 공간에서 명상 호흡을 하면서 자신의 들숨과 날숨이 마치 빛나는 별 무리처럼 몸에 들어왔다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때까지 TRIPP의 VR 명상은 혼자 하는 경험이었다. 에볼VR을 인수함으로써 이 회사는 고정되지 않은 사회적 관계에 기반을 둔 VR 모임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가상 공간에서 사람들은 언제든지 모임에 참석하거나 사람을 만날 수 있다.
환자와 노인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
세잉 굿바이는 매주 화요일 톰 니켈이 주관하는 데스 Q&A의 저녁 프로그램이다. 이 모임에서는 세션이 끝날 때마다 아바타들이 화롯불 주변으로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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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한 대부분의 아바타는 평범한 모습이다. 하지만 몇몇은 파란 피부색처럼 특이한 외모를 선택한다. 필자는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며 단조로운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으로 아바타를 꾸몄다. 그러나 니켈은 먼저 손을 든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마친 다음, 조용히 있던 사람들을 불러 혹시 나누고 싶은 생각이 있는지 묻는다. 두 차례의 세잉 굿바이 세션에 참여하는 동안 필자는 ‘그렇다’고 답하는 자신을 보며 스스로 놀랐다. 나는 한 번은 고통스러웠던 이별에 관해 이야기했고 그다음에는 어머니의 암 진단에 관해 말했다. 나는 두 가지 모두를 현실 세계의 친구들에게도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가상세계에서 이야기할 때에는 감정 과잉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친구의 위로만으로는 해소되지 않았던 불안감을 남들에게 털어놓을 수 있어서 좋았다.
참가자들의 나이는 다양했다. 대부분 30세 이상이었고 특히 60세 이상이 많았다. 필자는 처음 이 부분에 놀랐지만, 뒤늦게 생각해 보건대 VR은 노인들에게 있어 분명 특별한 매력이 있었다.
세잉 굿바이에는 ‘심오한 학생(Esoteric Student)’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인물이 매번 참석했다. 영국식 억양을 가진 이 참석자는 2020년에 즉흥적으로 오큘러스를 샀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심각한 병에 걸린 그의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할머니의 세계가 줄어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80세 노파가 되어 자신의 세상이 작아지는 것을 상상해 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집 안이 자신의 세상이다. 세상은 점점 줄어들어서 결국에는 한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그러고는 인생의 끝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할머니에게 오큘러스로 “우주를 유영해 보고 싶은지” 여쭈었다.
그들은 나사(NASA)에서 제공하는 인기 VR 체험을 통해 국제 우주정거장에서 지구를 바라보았다. 그는 속이 울렁거렸지만, 할머니는 매우 좋아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 본 적이 없었다.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 가상세계 속 다양한 여행지와 지구 밖 화성을 구경했다. 매우 사실적이고 선명하며 몰입감 있는 이미지로 렌더링 된 가상의 공간들이었다.
이렇게 가상세계에서 이야기하면 감정 과잉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친구의 위로만으로 해소되지 않았던 불안감을 남들에게 털어놓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는 다소 울먹이며 말했다. “할머니는 젊었을 적 대공황을 겪고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버밍엄의 방공호에서 공중 폭격을 피해 몸을 숨겼다. 그랬던 할머니가 말년에 이르러 마침내 우주를 누비게 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세잉 굿바이와 데스 Q&A에 자주 참석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불치병에 걸리거나 장애를 가진 이들도 있다. VR은 사람들이 각자의 신체적 한계를 넘어 우정을 쌓고 새로운 경험을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또 노인들이 친구의 죽음을 겪거나 자녀들이 독립해 멀어질 때, 또는 은퇴하여 직장을 떠날 때 밀려오는 외로움을 피할 수 있게 도와준다.
매트 또한 가상세계에서 움직이기를 즐긴다. 그녀는 “가상세계에서는 높은 건물을 달려 뛰어내릴 수 있다.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며 “정말 다시 젊어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가상 세계가 도울 수 있는 범위
VR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터는 VR에서 인간 정서의 영역을 깊이 다루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다. 누군가 감정을 나누다가 너무 고통스러워 자해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녀는 아바타로 상호작용하는 세상에서는 비언어적 의사소통 신호가 아예 사라져 “많은 단서가 숨겨진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의 손동작이나 발을 꼼지락거리는 행동 등을 주의 깊게 관찰하도록 훈련받는다.
또한 ‘데스 Q&A’라는 명칭은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더 끌어들일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지난 9월 필자가 참석했던 데스 Q&A 세션에서는 한 참석자가 끝날 무렵이 되어서야 자기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물었다. 라임색 스냅백을 쓴 아바타는 앳된 목소리로 말했다. 몇 주 전 그는 결국 자살을 하기로 마음먹었고 그 순간 마음에 엄청난 평화가 찾아왔다고 말했다. 결국 살아난 뒤에도 자신의 행동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여자들에게 쉼 없이 치근덕거리고 모든 게 우스워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가벼우면서도 차분해 보였다. 그의 질문은 결국 ‘난 아직 여기 있는데 이제 어쩌지?’라는 것이었다.
니켈은 즉시 긴급 행동에 나섰다. 니켈은 그를 다른 자살 생존자와 연결해 주었으며 세션이 끝난 후 일대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지 물었다.
니켈은 참석자가 우려스러운 이야기를 할 때 스스로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나는 참석자를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선 상대방의 상태가 안전한지부터 확인하자.” 니켈은 호스피스에서 일했던 것 외에도 캘리포니아 전문 심리학 학교(California School for Professional Psychology)에서 평생 교육 책임자로 지내며 자살 인식과 반응에 대한 워크숍 개발을 도왔다. 이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던 그는 이러한 교육이 모두 VR을 고려하여 업데이트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경청하는 자세로 판단하지 않고 섣부르게 구하려고 하지 않는 수준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모임의 참석자들이 ‘위태로워’ 보이면, 니켈은 그들에게 개인 메시지로 그의 이메일 주소를 알린다. 스냅백을 쓴 소년은 답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연락을 해왔다. 그는 “몇몇 경우 나는 그들에게 매일 전화했다”고 말한다.
리스터는 자살 생각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의 반복적인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녀는 만약 가상현실에서 다른 사람의 애도를 돕고 싶다면 “이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락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후속 조치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상현실이 아닌 실제 세상에서도 누구도 사람들이 도움을 받도록 강제할 수 없다.
VR에서는 지속적인 감시 및 신체적 구속과 같이 자살을 예방하는 더 강제적인 수단들을 쓸 수 없다. 리스터는 “만약 누군가가 내 상담실로 직접 찾아와 자살을 예고하거나 최근의 자살 시도 경험을 이야기한다면 나는 그들이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다른 정규 상담을 멈추고 그들과 같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헤드셋만 착용하면 되었다”
시한부를 진단받고 몇 달이 지났을 무렵 테드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었다. 한때 건장했던 그의 다리는 마르고 쇠약해졌다. 매트는 그녀의 새 친구와 동료들에게 이 같은 테드의 상황을 알렸다.
그리고 테드가 죽기 이틀 전날 밤, 그는 갑자기 활기 있는 모습으로 깨어났다. 그는 아내에게 중국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지 물었다.
“데스 Q&A에서 나는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쏟아내며 슬퍼할 수 있었고, 아픈 일이었지만 상처가 아물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낮 동안 내내 잠을 자고 처방받은 약도 먹지 않아 매트를 걱정하게 하던 날이었다. 그날 밤 그들은 함께 소파에서 돼지고기 볶음밥을 먹었다. 테드는 지난 몇 주 간 먹은 것보다 더 많은 양을 먹었다. 뉴욕 출신임에도 시카고 컵스의 열렬한 팬이었던 그는 시카고 컵스의 경기를 틀어 놓았다. 매트는 “그는 약체팀을 좋아했다”라고 말했다.
그것이 그의 제대로 된 마지막 식사였다. 테드 매트는 2022년 6월 11일 향년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틀 후 매트는 데스 Q&A와 세잉 굿바이 모임에 참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내가 가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고 하면서 “하지만 헤드셋만 끼면 됐다”라고 덧붙였다.
참석자들 차례대로 순서가 돌아갔던 평소 세션과 달리, 그날의 모임은 거의 매트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그날 밤 세잉 굿바이에는 보통 때보다 두 배 많은 사람이 참석했다. 사람들은 그들이 매트를 응원하러 왔다고 이야기했다. 몇 달 동안의 만남을 통해 그들은 테드를 직접 알고 지낸 사이처럼 느끼게 되었다. 그녀는 남편의 임종 과정과 그동안 나누었던 대화를 말했다. 매트는 “나는 내가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날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고 나도 그를 끔찍이 사랑했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를 진심으로 떠나보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참석자들은 애도를 표했고 질문을 했다. 매트는 사람들이 다른 이들은 상실의 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하는지 “비교하고 배우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말한다.
테드가 죽고 한 달 뒤 매트는 나흘 밤을 내리 숙면했다고 에볼VR 채팅방에 공유했다. 그녀는 ”빠져들 듯이 잠들었다”고 말한다. 그로부터 3개월 후, 필자는 매트와 함께 데스 Q&A 세션에 참여했다. 그녀는 테드 없이 귓병을 치료하려다 짜증이 났다고 말했다. “나는 그저 누군가 나를 위로해 주길 바랐을 뿐이라고!”라는 매트의 발언을 듣고 그날 모임에 처음 참석한 사람이 흐느끼며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1년 반 전에 남편을 잃었다고 했다. 그날 밤 매트는 그녀를 세잉 굿바이에 초대했고 같이 있으면서 위로해 주었다.
이제 테드가 세상을 떠난 지 6개월이 되었다. 매트는 스스로 어떤 전환점에 도달했다고 느낀다. 그녀는 여전히 슬프기는 하지만, 이전보다 덜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물론 다시 삶을 살아나가야 한다는 현실이 그녀를 슬프게 한다. 그녀는 여전히 매일 몇 시간을 가상 현실 세계에서 보낸다. 때로 그녀는 명상 세션에 들어가거나 친구들과 게임을 한다. 그러나 매주 화요일에 그녀는 슬픔을 나누는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시간을 비워 놓는다.
매트는 데스 Q&A가 모두에게 잘 맞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녀는 친한 친구들이 이 모임이 컬트 집단은 아닌지 물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VR에서 그녀의 슬픔을 공유하고 그녀가 배운 것을 나누는 일은 “솔직히 따뜻한 담요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 모임이 없었다면 지금까지의 여정이 어땠을지 모르겠다”면서 “아마 지금보다 훨씬 나빴을 것”이라고 말한다.
* 이 글을 쓴 하나 키로스는 MIT 테크놀로지 리뷰의 이머징 저널리즘 펠로우(Emerging Journalism Fellow)였으며, 과학과 인권, 기술을 다루는 프리랜서 작가이다.